[영화] 절교로서 드러나는 관계의 형태에 관하여_<이니셰린의 밴시>, 2022, 마틴맥도나
<이니셰린의 밴시>, 2022, 마틴맥도나
* 스포약간 있음, 결정적인것은 없음.
<이니셰린의 밴시>는 1920년대 아일랜드 외딴 섬 이니셰린을 배경으로, 낙농업을하는 파우릭과 늙은 바이올리니스트 콜름의 관계가 콜름의 일방적인 '절교선언'을 통해 관계가 점차 파국으로 치 닿는 모습을 블랙코미디로서 보여주는 영화이다.
아일랜드 내전을 은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일랜드 역사를 모르는 나로서는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그렇게 해석하지 않아도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이자 일상에서는 대부분 거론하지 않지만 흔히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관계의 형태를 다루고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콜름과 시오반(파우릭의 여동생)에 공감하고 이입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파우릭이라는 캐릭터는 눈치 없고 모자랄지 언정 Good man, “그래도 사람은 좋은사람이여~”로 대표되는 사람이자(돌려까기 되는?) 인간관계에서 다정함(다정한 자신)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그에 반해 늙은 바이올리니스트 콜름은 삶에 있어 의미, 이상과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때문에 콜름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이해하고자 하고, 고독을 마주하며 예술(음악)과 창작을 통해 그 답을 찾으려는 사람인데 반해, 파우릭은 아일랜드 내전중인 와중에도 그와 상관없이 평화로운 시골마을에서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고자 한다.
이렇게 삶의 가치관, 추구하는 인생관이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 영화는 서로가 서로의 본질(인생관)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관계의 파국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콜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파우릭의 지루한 스몰토크에서 벗어나기위해 절교를 선언하고(파우릭의 입장에서는 급작스러울수있지만 콜른의 입장에서는 이미 꾸준히 진행되었을 것이라 예상되는),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듣는 파우릭에게 더 이상 말 걸면 자신의 신체(바이올린 연주자의 손가락)을 훼손하겠다며 극단적으로 경고하지만.. 그렇게 콜른은 자해하면서까지 자신의 시간을 찾으려함에도 파우릭의 인생관에서는 절대로 이해못할 지점이기에, 단순히 콜름의 우울함(감정 기복)으로 치부해 그저 서로 다정했던 과거 그때의 친구로 돌아오라 행동하며 영화는 끝으로 달려간다.
이러한 영화의 묘사는 터놓고 말할 순 없지만(일상에서도 크게 각오해야하는) 그 이면의 진실을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아붙여 보여줬다 생각되는데, 영화 <파수꾼>에서 보여준 '그때의 그 관계, 우리 친구였던 적이 있어?'로 생각해보게되는 질문과 공명하는 지점이 있고, 카카오 웹툰 <도토리문화센터> 53~59화 나세미(파우릭과 유사)와 송수지(콜름과 유사)의 에피소드로서 다뤄진 관계의 형태들을 다룬 작품들이 함께 생각났다. 또 재밌게 느껴졌던건, 동시에 2023 오스카상 수상후보였던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과 <이니셰린의 밴시>가 다룬 다정함(Kind)의 차이인데,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원스>에서의 다정함은 반복되는 관계의 절망 속에서 만들어진 의미 없음, 덧없음, 허무주의에서 성찰적 다정함을 통해 여전히 폐허라 여겨지는 세상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자하는 시도였다면, <이니셰린의 밴시>는 때때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 외면하는 무성찰적 다정함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파국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다루고자하는 주제가 대비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추가로 개인적 얘기를 하자면, 의미없는 대화로 가득 찬 회식, 대화보다 흥으로 가득 찬 술자리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콜름의 태도에 일정부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콜름의 그 극단적인 방식에서 예술병이라 항간에 비하되기도 하지만, ‘파우릭과 여태껏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고 외로움만 커지며 지쳤다는 것 + 본인의 노화, 죽음을 앞두고 그동안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 또는 시간을 낭비하던 자신을 참을 수 없어서’가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또 영화에서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에게 심적으로는 더 공감하면서 봤는데, 아일랜드 시골마을에서 거의 유일하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과 관계에 있어서의 친절함을 유지하고자 하며, 본인 삶에서의 의미적 가치 추구를 고민하고 각성한다는 점에서 좋았고 말이다.
그렇게 영화로서 보여주는 관계의 형태를 통해 내 삶에서 지나온 관계의 형태를 반추하게 되는데, 나 또한 관계에 콜름처럼 선을 그었던 적이 있고, 그임 당한 적도 있고, 20대 초반에 파우릭처럼 차였다고 비일상적인 상태에 있었던 기억들 말이다. 때때로 그러한 관계의 끝에 대하여 당사자에게 이유를 묻기도, 역으로 설명한 적도 있는데, 그때마다 서로간의 가치관 차이로 끝끝내 좁혀지지 않는 간극들, 서로가 원하는 것, 추구하는 것이 다르며, 살아온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끝끝내 이해 될 수 없는 지점들을 확인하며 슬프고 아팠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관계의 차이를 인지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노력하고있구나 하며 조금이라도 성장한 지점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관계의 형태를 생각하게되는 아일랜드의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파도소리가 기억나는 마틴맥도나 감독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