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디자인 정치학, 뤼번 파터르 지음, 쪽프레스

디자인 정치학, 뤼번 파터르, 쪽프레스, 235p, 2022년 한국 출간(2016년 출간)
<디자인 정치학>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디자이너 뤼번 파터르(Ruben Pater)의 첫 번째 책으로 소위 세계화(Global)로 일컬어지는 다국어, 다문화 환경 속에서 소통하게 되는 디자이너가 숙지해야 되는 논쟁적인 디자인 사례들을 항목별로 정리해 소개하는 책이다. 예를 들어 셀럽들이 패션으로 착용해 논란이 되었던 전범기 디자인으로서 ‘욱일승천기’, ‘하켄트로이츠’나 한국 코미디 방송 또는 고등학생 졸업사진에서 흑인 분장을 통해 (의도야 순수했다, 몰랐다 하지만..) 인종차별적 유머코드(이미지, 언어)를 차용해 논란이 됐던 사례 및 현상이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서문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세계인구 중 읽고 쓸줄 아는 85%(유네스코 2015)’, ‘세계 인구 중 하루 소득이 10달러 이상인 20%(월드뱅크 2008)’, ‘전자책으로 읽는다면 세계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40%(월드뱅크 2015)’, ‘세계인구 중 고등교육은 소수가 누리며, 고등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소수의 사람’으로 특정하는데, 보편적(Universal), 객관적(Objective), 표준적(Normal)인 시각적 소통을 목표로 하는 디자인이 사실 굉장히 계층적이고 협소한 대상을 목표로 하며,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점을 ‘모든 디자인은 정치적이다.’라는 문구로서 고백하는 듯하며, 이어 디자인이 중립적이지 않으며, 우리 모두 문화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 ‘심리학, 인류학, 언론정보학, 문화학’의 관점에서 위와 같은 자각을 점검하고자 함을 밝힌다.
위와같은 인식을 통해 책은 소위 사회전반 거의 모든 것의 시각적 의도로서 적용되는 디자인(Design)의 정치적 올바름 PC(Political Correctness)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으며, 전 세계의 다양한 디자인 사례들을 유형에 따라 분류해 아카이브화하며 소개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1장. 언어와 타이포그래피」, 「2장. 색상과 대비」, 「3장. 이미지와 사진」, 「4장. 상징과 아이콘」, 「5장. 인포그래픽」으로 구성되며 각 챕터별 18, 12, 11, 9, 16개의 사례, 총 66가지의 디자인 사례를 소개하는데, 각 사례별로 깊은 비평 및 분석보다 다양한 이미지와 1~2p 분량의 짧은 토막글로 구성되어 있어 직관적이기 때문에 내용은 쉽고 빠르게 읽혔다.
각 챕터별 다루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1장. 언어와 타이포그래피」은 문자의 문화권별 특성과 차이(아프리카 등 소수민족의 문자, 아랍권 문자 디자인), 문자를 다른 문화권으로 번역 및 사용하는데 있어서의 어려움(문화적 교차검증 필요성), 컴퓨터의 등장으로 등장한 폰트의 보편적이란 편향성(유니코드), 민족주의적, 오리엔탈리즘적 맥락(독일 프락투어, 차이나타운체, 이국적 글자체), 디자인하면 들어봤을 헬베티카 폰트에 담긴 신화와 허구성 등을 다룬다.


「2장. 색상과 대비」는 문화별 색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컬러 시스템 차이, 특정 색상은 그 물감이 생산되는 비용에 따라 부의 상징이 되거나 심리적인 효과, 국가별 문화적 차이, 젠더, 인종, 이데올로기적인 색상 사용, 사진이나 이미지 편집 툴의 컬러 세팅에 내재된 문화적 편견에 대해 다룬다.

「3장. 이미지와 사진」에서는 서구에서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시각성인 원근법이 상대적이라는 것과 문화적 맥락차이에 따른 소통 실패 사례(개인주의, 가족주의 문화권에서 이미지를 읽는 방식의 차이, 기혼/미혼을 드러내는 히잡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포스터), 검열(정치적 인사 제거, 노출 검열), 젠더(성상품화, 대상화), 인종(다양성이 아닌 형식적이거나 편견을 강화하는), 문화 제국주의(서구가 우월한 듯 제시하는), 도용(특정 문화권의 고유성이 아닌 단지 스타일을 도용해 상품화해 파는 문제)등의 문제를 다룬다.


「4장. 상징과 아이콘」에서는 객관적이며 중립적이라는 아이소타입이 식민주의 시대 유럽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과 평화의 상징 ‘☮’이 나치 군대를 상징했다가, 반기독교적으로 인식되는 인식변화에대해 다루며, 장애인 로고의 수동성, 표지판 로고의 젠더 편향성, 인종차별적 스포츠팀 로고 등의 로고 및 심볼 디자인에 대해 다룬다.

「5장. 인포그래픽」은 유럽을 실제보다 크게 그리고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를 작게 그리는 식민주의적 관점이 반영된 지도의 편향성에 대해 다루며 대안적인 지도들을 보여주고, 통계적 데이터를 그래프와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는 인포그래픽이 기법에 따라 실제를 더 왜곡해서 편향적으로 주는 지점, UX에서 자주 활용되는 다크패턴(끼워 팔기), 시간, 표준신장 등에서 사용한 편향적 디자인에 대해 다룬다.


이와같이 시각 디자인의 영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5가지의 매체와 66가지의 사례는 보편적이거나 객관적이라 평소 생각해 왔던 시각 및 언어적 소통 방식들이 얼마나 편향적일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례 모음집으로서 생각된다. 쉬우면서 직관적으로 ‘정치적, 윤리적’인 감각에 대해 알려주는 교과서 같이 느껴지는 이 책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전문가뿐만이 아닌 대중, 아마추어의 영역에서 콘텐츠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관객들이 원하는 니즈를 이해하는 ‘판단력’의 영역과 이를 충족시키는 ‘실행력’도 중요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정치적, 윤리적 감각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현시점에서 필요한 책이라 생각되어지는데, 책에서 다루는 사례들은 보다 공공의 영역(Public)에서 소비되는 콘텐츠의 경우에 해당하지만 개인적으로라도 소위 빻은 생각, 언행 등을 스스로라도 뱉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 인터넷 방송, 유튜브, SNS의 경우 동시대 트렌드에 무엇보다 빠르게 반응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특성이 있지만, 게토(Ghetto)적인 특성으로 끼리끼리, (커뮤니티)내수용으로 유머, 밈 등의 콘텐츠를 서로 폐쇄적으로 공유하면서 자극이 더 센 자극을 부르며 일으키며 역치를 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듯한데, 이러한 ‘(관종) 괴물에 대한 니즈’를 키우는 현상은 공공에 대한 감각, 정치적인 감각, 윤리적 감각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책에서 건드리는 지점을 한번 고민해 봐야 될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