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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래서 예술인가요?, 나이절 워버턴 지음, 박준영 옮김, 미진사

by had0g 2023. 6. 11.

 

 

1. 책 소개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없이 제작되고 전시되며 감동을 주거나, 난해하거나, 논란을 일으키거나,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예술작품을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고 ‘저런 것도 예술이야?’라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내가 만드는 것이 예술인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뭐지?’하며 자신의 예술관을 의심하거나 점검해 본 적이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예술인가요? THE ART QUESTION』 책은 그러한 의심이 귀결되어 맺히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했던 철학자들의 답변을 정리해 소개 및 비평하는 책으로, 동시대의 예술작품들을 볼 때 도움이 될 관점들, 예술관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책이다. 

 

책의 저자 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교수로 영국 개방대학교(Open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저서 및 팟캐스트,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가장 널리 읽히는 철학자’로 소개되는데, 2003년 『THE ART QUESTION』 제목으로 첫 출간된 책은 다소 난해하거나 어렵게 쓰인 20세기 미학을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쓰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책이 쓰인 시점에서 20년이 지난 현재(한국에는 2020년 번역되어 출간), 저자가 소개하는 예술을 정의하는 이론 및 관점들이 현재 얼마나 유효하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는데, 시대는 달라졌더래도 철학자들이 다듬은 핵심은 유효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동시대 예술을 관람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관점을 고수한다기보다, 저자가 책을 통해 분류한 4가지 접근방식을 조금씩 다 사용하면서 관람하는 듯 하니 말이다.

 

그렇게 저자가 4가지 분류로서 소개하는 예술에관한 미학적 이론 및 미학자로 「제1장. 의미 있는 형식」은 모든 시대의 예술에는 공통적 특성인 ‘미적형식’이 있고 이를 통해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정의하고자 하는 클라이브 벨을 소개하며, 「제2장. 감정 표현」은 예술의 핵심이 모호한 감정을 분명하게 하는 데 있다 주장하는 로빈 조지 콜링우드를 소개하고, 「제3장. 가족유사성」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개념에 영향을 받아 예술은 늘 새롭게 변화하고 확장하기 때문에 공통된 속성으로 범주화하기 어렵다는 ‘예술정의불가론’, 「제4장. 제도라는 맥락」은 미술계 제도 안에 있으면 예술작품이 된다는 분류적 이론을 주장하는 조지 딕키 등의 미학이론을 다루며, 마지막으로 「제5장. 그래서 결론은?」에서는 앞서 설명한 설명들을 종합하며 저자의 관점을 서술한다.

 

이러한 책의 구성은 미학자들의 이론과 주장을 단순 소개하는 것이 아닌, 장단점과 한계, 후대 철학자의 보론 등을 함께 서술하고 다양한 도판 이미지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보다 풍성하고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데, 저자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책을 끝까지 따라가다보면 동시대에 펼쳐진 예술작품들을 편향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끝으로 책에서 소개한 4가지 관점들을 종합하며 ‘예술이 무엇인지?’ 화두에 집중하기보다 특정 예술작품이 ‘왜 (나에게) 소중한지?’, ‘작품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개별 예술작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히는데, 이러한 맺음말에서 예술 관련 본말전도된 공허한 논쟁, 이해불가, 난해한 것에서 오는 짜증 표현보다 중요한 것을 환기하는 듯하고 말이다.

 

 

 

2. 내용 요약

 

책의 내용을 각 챕터별로 요약해 좀 더 서술하자면, 「제1장. 의미 있는 형식」에서 소개하는 클라이브 벨의 이론의 요지는 ‘예술은 의미있는 형식으로, 미적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선, 형태, 색채의 관계를 뜻하며, 이는 모든 시대의 예술작품의 유일한 공통 특징이다.’인데, 여기서 벨이 말하는 ‘미적감정’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닌 작품 속 ‘선, 형태, 색채’를 미적관조하는데서 오는 감정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벨의 이론이 모호한 감상자의 직관, 안목에 의존하며 엘리트주의적 사고라는 점과 의미 있는 형식이 아닌 것은 예술이 아니라는 강조는 오히려 예술(Art)과 공예(Craft)의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 ‘형식-미적감정’만의 강조로 재현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앞으로 나올 다양한 예술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으로 비판과 한계를 논한다.

벨의 이론으로는 몬드리안의 추상(순수미술)과 한국의 조각보(공예)의 차이를 말하기 어렵다.

 

「제2장. 감정 표현」에서는 앞서 벨의 이론이 예술의 영원한 속성, 본질을 찾고자 하는 시도 였다면, 이에 반하여 예술은 ‘지금 이곳’이라는 시대적 속성을 반영하며 예술과 기술(Craft)을 구분한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 로빈 조지 콜링우드의 미학이론을 설명한다. 콜링우드의 이론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기술은 수단-목적, 계획-실행으로 구분되는 한편 예술은 구분되기보다 의도 이상으로 표현되며, 예술가-관객 모두 상상적 방식으로 감정을 명료화한다.’로 설명하며 ‘주술적(magic), 오락적(amusement, entertainment) 예술은 특정목적(주술-공리주의적, 오락-쾌락주의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진정한 예술보다는 기술(사이비 예술)로 구분되어야 한다’라 설명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콜링우드가 말하는 감정표현, 진정한 예술론은 명백히 예술이 아닌 사례도 예술화되며(심리치료 상담), 예술인 경우에도 배제하는 경우(중세시대 종교화), 오락적 예술이라도 감독이 영화제작과정에서 모호한 감정을 정제하고 표현한 경우(히치콕 <사이코>) 등의 예시로서 그의 예술론이 일반화하기 어려운 점을 말한다.

콜링우드의 이론에서 주술적 목적(종교화), 히치콕 감독의 영화(대중영화-오락적)은 순수예술이 될 수 없다.

 

「제3장. 가족유사성」에서는 1,2장에서 예술을 하나의 정의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이는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려고”한 시도이며 비트겐슈타인이 ‘체스, 카드, 축구, 야구, 테니스’ 등.. 모든 놀이에서 공통성(본질)을 찾기보다 유사성을 발견해 ‘가족유사성’ 용어로 놀이를 정의한 것처럼, 이러한 논지를 계승해 예술을 열린개념이자 정의불가론으로서 전개하는 모리스 와이츠의 이론을 설명한다. ‘(1) 예술의 개념화, 정의 시도는 실패해 왔으며, (2) 이는 전통에 도전하고 확장해 온 예술의 창조성을 제한한다.’로서 요약되는 와이츠의 견해에 대해 저자는 전통적 정의가 제한하는 부분은 일부이자 창의성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비약이며 오히려 제약이 창조성을 만드는 사례(푸가, 하이쿠)도 존재하고, 가족유사성으로 묶이는 예술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없다는 점에서 비판한다. 그렇게 와이츠가 제시한 두 가지 논거 (1), (2)는 빈약하다 평하지만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유력한 가설이라 언급하는데, 모든 예술작품을 예술로 만들어주는 비전시적 공통성(ex. 제도,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전통적 의미의 본질주의 예술론은 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4장. 제도라는 맥락」로 이어진다. 

닮았다 말하기엔 다르고, 다르다 하기엔 닮은 가족의 유사성처럼

 

「제4장. 제도라는 맥락」에서는 ‘다다이즘, 팝아트, 파운드 아트, 해프닝 ..’ 등의 뒤샹 이후 20세기 예술들이 등장하면서 창안된 제도론을 설명한다. 제도론을 대변하는 조지 디키의 이론은 “분류적 의미에서 예술작품은 (1) 인공품이되, (2) 특정사회제도(예술계)를 대표해 활동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감상후보의 지위를 부여한 측면들로 이루어진다.”로 설명되는데, 저자는 이는 분류적 측면에서만 예술을 바라보기 때문에 중립적 태도로서 특정 예술작품에 대해 미학적, 예술적, 질적 가치를 논할 수 없으며, ‘예술계’의 구성원이 거의 모든 것들을 예술로 둔갑시킬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넓다는 점에서 비판한다. 이에 대해 ‘역사, 진지한 의도’ 등으로 범위를 좁혀 보완하고자 하는 제럴드 레빈슨의 시도가 있으나, 역사적으로 계승되어 이어지는 최초의 예술을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과 과거 초상화는 예술적 의도보다는 여권사진이나 증명사진처럼 예술적 의도와는 다르게 의도됐다는 점에서 논리적 결함이 있음을 지적한다. 

2016년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뮌이 한국미술계 주요 인사들을 시각화 했었다.

 

끝으로 저자는 '예술을 하나의 정의로 규정하려는 시도'들이 가족유사성 용어이며, ‘예술은 정의 할 수 없다.’로 잠정적인 결론을 짓는다. 동시대의 수많은 작품들이 예술일 수 있는 이유는 공통적이며 본질적인 예술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중첩하는 유의미한 유사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말이다. 때문에 문화적 유사성 및 결정들이 자의적이거나, 선을 긋거나, 과도한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때문에 예술제도 밖 관객들이 맥락없이 접하는 난해한 작품들에 대해 '예술이 무엇인지?' 화두적 정의에 함몰되기보다 개별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최선이며, 왜 소중하고 중요한지, 유의미한 지점에 초점을 맞출 것을 당부하며 마친다.

 

 

 

3. 마치며

 

예전에 미대를 졸업한 전공생에게 그런 질문을 받은적이 있다 “추상미술 작품은 어떻게 감상해야 되는 거예요?”. 그 친구는 전공이 입체를 다루는 조소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평면을 다루는 회화 전공인 나에게 그런 접근법을 물어본 것인데, 답변 당시에는 교수님도 같이 있었기에.. 솔직한 내 관점을 말하기보다 책의 1장 클라이브 벨 식으로 '색,형태,구성,리듬감, 제작배경, 텍스트..' 어쩌구 모범생처럼 답변했던 것으로 기억난다(S교수님은 내가 친한사람 한정으로 솔직하고 시니컬한 표현을 해오다 보니 식상한 답변에 실망한 표정으로 기억된다..). 만약 그때 했던 답변을 지금 와서 다시 한다면 또는 유사한 질문이라면 지금은 어떻게 답변을 할지 생각해 보게 되는데, 아마도 누가 질문하는지(질문자의 수준, 관심도, 배경지식)에 따라서, 그리고 어떤 작품에 대해 묻는지(난해한 특정대상)에 따라서 맞춤형으로 답변할 것 같다. 최대한 그 사람의 삶의 방향, 관점을 지지하되, 질문자의 세계관에서는 생각해보지 못할 지점들을 섞어서 사고를 확장하는 방향으로(좋은작품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믿기에.) 그리고 내가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솔직히 답변하고 말이다.(상업미술, 갤러리, 콜렉터 관점 전혀 모름)

 

그렇게 책은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동시대 미술을 바라보는 나의 예술관을 세밀한 언어로 다시 정립하게하고, ‘예술애호가, 비전공자, 혐오자, 콜렉터, 친구, 가족, 회사사람들..’등 다양한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해 볼 법한 질문과 맞춤형 답변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한 책의 맺음말에서 강조하는 지점으로 그래서 예술이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미있는 지점은 무엇인지?’ 본질적인 질문을 생각하게되는데, 요즘시대 흔히 보이는 풍경인 SNS ‘유명전시 및 작품+차려입은 착장+우연히 찍힌듯한 포즈’는 상징자본으로서 고급취미를 향유하는 사람임을 암시하고자 하며 지적허영심을 충족하고, ‘좋아요, 댓글, 공유, 조회수’등의 유명세가 광고, 홍보 등 마케팅 수단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삶에서 유효한 전략으로 보인다. 또한 미술계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태그 하는 현상은 본인이 현재 미술계 구조에서 멀어지지 않고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고 말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유지하는 장치인 SNS는 동시대의 혈관 같다 생각되는데, 책에서 언급되는 바와 같이 동시대 모든 것들이 예술이 될 수 있는 분류적 정의는 특정 예술작품의 좋고/나쁨, 질적 가치에 대해서는 답변 할 수 없다는 점에서 SNS에 공유되는 이미지 및 현상들은 유명세 또는 쾌락을 얼마나 줄지 정도만 가늠 가능하고 질적 가치에 대해서는 평하기 어렵다 생각된다(천만관객 영화가 좋은 영화다 말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좋은 것인지 정크푸드인지 판단하는 ‘주관, 관점, 비판적 사유능력’은 본인이 살면서 길러야 한다는 숙제를 책에서 던진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는 내면의 ‘단단함-유연함-성숙함’과 연관된 부분이라 생각되어 ‘취향과 자의식과잉, 손쉬운 쾌락’이 강화되는 시대에서 기르고 훈련되어야 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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